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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지난밤에는 만월이 동쪽 낙산 위에 덩그렁 걸린 것을 보고 잠들었는데 새벽에는 인왕산 왼쪽 끝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언가 가슴을 어루만지는 듯해서 깼는데 달빛이었나 보다.
창을 마주보고 눕자 보름달이 내 속으로 달려 내려오는 듯하다. 내가 달이고 달이 나인 듯 그야말로 월아일체(月我一體)다. 몸과 마음이 세정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3년 전, 박물관을 삼청동에 세우면서 뜻하지 않았던 선물을 참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 주위를 감싸고 있는 자연과 곰삭은 서울의 체취는 축복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웅장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아기자기함을 감추고 있는 완벽한 삼각형의 북악산, 그 왼쪽에 바위를 성큼성큼 드러낸 모습이 의젓하고 너그러운 남정네 같은 인왕산, 경복궁을 넘어 남쪽으로 몸을 틀면 남산을 배경으로 서울의 맨해튼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 시선을 낮은 곳으로 옮기면 두 손을 활짝 펴지 않아도 맞닿는 골목길 사이로 자리한 한옥의 기와지붕들이 소곤소곤 속삭이는 듯 정겹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추억과 향수'를 수혈받으려는 인파가 몰려들면서 그 모습이 급격히 변해가고 있다. 매연과 소음은 심해지고 호젓함은 북적거림으로 바뀌었다.
철따라 장과 김장을 담그던 주택과 정담이 피어나던 구멍가게는 모두 상가로 그 모습이 달라졌다. 유일하게 서울 600년의 켜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건만 변화의 물결은 버티기 힘들 만큼 거세다. 이미 그 모습이 심하게 일그러진 인사동의 전철을 밟을까 두렵다.
삼청동의 변화는 우리 모두에게 '변화와 보존'의 합리적인 접점을 찾아내라고 외치고 있다. 서울이 21세기에 걸맞으면서도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발돋음하기 위해서는 지금 삼청동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강원 시인 / 세계장신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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