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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가장 큰 문제는 새로운 유형, 아니 발전해 가는 논술 문제에 대한 준비다. 대학이 변하면, 고등학교도 변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지난 회에서 현대사회가 지식정보화 사회이기 때문에, 그리고 적성시험의 대세를 장악해 가기 때문에 더욱 더 논리력 비판력을 강조한다고 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학의 통합교과형 논술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가를 보는 것이 역시 중등 논술에서도 그 방향을 잡는 데 유용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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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의 채점 평을 살펴보면, 많은 학생이 제시문이 제공하는 외적 정보에 이끌려 논제에 충실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학생들이 논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비판적 사고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짧은 답안을 요구했음에도 글의 구성이 논리적이지 않을 뿐더러 추상적인 어휘를 남발하여 자신의 생각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함" "견해의 나열만 있을 뿐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내용과 관계없는 주장을 펴는 것은 비판적 읽기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것은 논리적 글쓰기 능력이 부족함을 보여준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인간의 합리적 이성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오류의 의미와 원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해결 방안이나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
서울대 모의논술시험 문항 3번은 이와 같은 사실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수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용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 남자 비율이 약 94%라고 했을 때 자신이 대한민국 남자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될 확률이 94%라 믿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 대한민국 남자가 국회의원이 될 확률은 아주 낮다. 그런데 2002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카네만(Kahneman)과 그의 동료들은 사람들이 수치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 판단오류를 범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판단오류는 교육을 잘 받은 사람에게서도 발생한다.
(가) 에이즈를 야기하는 바이러스(HIV)의 발병률이 0.1%라고 하자. 한 과학자가 HIV 보균자를 탐지할 수 있는 검사를 개발하였다. 그런데 이 검사 방법이 완벽하지는 않다. 이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보균자로, 음성이 나오면 비보균자로 진단하게 된다. 이 검사는 HIV 보균자일 경우에 검사 결과가 100% 양성으로 나오지만, HIV 비보균자인 경우에도 양성으로 나올 확률이 5%가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의 검사결과가 양성으로 나왔을 때, 이 사람이 HIV 보균자일 확률은 얼마일까? 이 질문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95%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정답은 2% 이하다.
(나) 육군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 인터넷 게임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게임과 현실 속 폭력범죄의 연관성이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군 당국에 따르면 범인은 평소 휴가 때 국산 온라인게임을 열심히 즐기는 '게임광' 수준의 게이머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범인이 게임을 광적으로 즐겼다면 내부구조가 사각형인 군 내무반을 같은 사각형 구조인 컴퓨터 화면 속의 가상현실로 착각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등 이번 사건과 게임의 연관성을 시사하는 관측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게임과 폭력성의 상관관계가 부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특히 게임 내용이 갈수록 사실적이고 잔인해지면서 외국에서는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는 추세다. 미국에서는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 가족들이 "범인들이 폭력게임의 영향을 받았다"며 유명 게임업체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학부모 단체나 종교 단체가 주도해 폭력적 게임에 대한 규제를 촉구하는 운동이 활발히 벌어지면서 게임업계와 갈등을 빚고 있다. <2008 서울대 모의논술고사 인문계열 문항 3>
논제 1. 제시문 (가)에서 정답이 2% 이하인 이유와 사람들이 95% 이상이라고 잘못 판단하게 되는 이유를 각각 설명하시오. (300자 이내)
논제 2. 제시문 (나)의 신문기사는 게임이 청소년의 폭력범죄의 원인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터넷 게임을 하는 많은 청소년들은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는 커다란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 학생이 폭력범죄에 미치는 게임의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비행 청소년 1000명을 조사하였는데, 그중 990명이 게임에 중독되었거나 중독될 위험이 있는 집단으로 분류되었다. 그는 이러한 결과에 근거하여 게임이 청소년 폭력범죄의 주범이라고 주장하였다. 논제 1에 근거하여 이러한 주장을 비판하시오. (400자 이내)
논제 3. 논제 2에서의 비판에 근거하여 게임과 폭력의 상호연관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시오. (500자 이내)
논제 1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류를 범하는 이유를 묻고 있다. 학생들은 전체적으로 이 논제에 대해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조건부 확률의 이해를 바탕으로 무난하게 답했다. 논제 2는 논제 1의 답변을 직접 활용할 수 있는 내용으로서, 역시 무난하게 답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논제 3에 적절하게 답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논제 1과 2에 대한 답변은 오류의 내용 분석이지 오류가 발생한 원인을 분석한 것이 아니다. 논제 3은 오류가 발생한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런 오류를 피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적절하게 답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비판적 사고 없이 단순히 암기한 지식만으로는 적절하게 답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은 단기간에 쉽게 길러지지 않는다. 비판적 사고력이 하루아침에 생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 과정에서 흔히 범하는 실수, 즉 오류의 일반적인 유형과 원인을 이해한다면 최소한 그런 실수는 피할 수 있을 것이므로 주어진 문제를 보다 정확하게 분석하고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경향의 통합논술은 어느 때보다 비판적 사고 기술의 활용을 많이 요구한다.
통합 논술의 첫 번째 목적은 학생들이 주어진 정보를 독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과 대안을 논리적으로 제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통합교과형 논술 프로젝트 <논리사고> 연구원 윤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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