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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신은 그녀의 얼굴조차 본 일이 없다. 와타나베 부인이란 특정인이 아니라 일본 주부 전체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치면 ‘김씨 부인’쯤 되겠다. 어찌 됐건 당신은 아주 실질적인 이유로 그들을 주시해야 한다. 그들이 당신의 투자 수익률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와타나베 부인들은 엔화 투기자금의 큰손이다. 일본의 저금리에 실망한 나머지 남편 월급을 외화(外貨)로 바꿔 해외에 투자해 왔다. 그러던 중 미국발(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대출) 사태가 터졌다.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이들은 해외 투자자금을 빼내 일본으로 되갖고 갈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들이 자금을 회수해 간다면 또 하나의 폭탄이 터지는 셈이다. 각국 주가가 떨어지고, 환율이 요동치게 된다. 당연히 당신의 투자 수익률에도 영향을 미친다. 별 생각 없이 해외펀드에 가입한 당신, 안방 PC로 주식 투자하는 당신이 얼굴조차 모르는 일본 주부들 심리까지 신경 써야 할 이유다.
그러나 이것은 맛보기에 불과하다. 이제부터 당신은 세계 곳곳에 잠복한 오만 가지 변수를 피해가며 험난한 ‘재테크의 정글’을 헤쳐가야 한다. 당장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등의 불로 떨어져 있다. 이른바 ‘엔 캐리 트레이드(엔 투기자금)’의 폭탄도 언제 터질지 모른다.
얼마 전 ‘파리바은행’의 환매보류 조치 때 실감하지 않았는가. 수천㎞ 떨어진 프랑스 은행의 간단한 행동이 순식간에 지구를 돌아 서울 증시를 직격하고 당신의 투자 수익률을 흔들어 놓았다. 세계 금융은 스크럼 짠 럭비선수처럼 한 묶음으로 움직이고 있다.
‘편한 투자’에 익숙해진 당신으로선 잘 적응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난 4년간 재테크는 참 수월했다. 세계적 저(低)금리로 마구 풀린 뭉칫돈이 온갖 곳을 휘젓고 다니며 주식과 부동산 값을 올려 놓았다. 어디에든 투자하기만 했다면 대체로 돈을 벌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동안 당신의 주식 투자 수익률은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이름조차 생소한 동유럽이며 남미 펀드에 ‘묻지마 투자’를 해도 그럭저럭 돈을 벌었다.
4년간 무려 400%의 수익률을 낸 펀드도 있다(미래에셋증권 ‘디스커버리펀드’). 석 달 새 주가가 1500에서 2000으로 폭등하고, 주식해서 돈 번 ‘대박’ 스토리가 곳곳에서 탄생했다. 그러니 당신은 한 자릿수 수익률 정도로는 직성이 안 풀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눈높이를 낮출 때가 됐다. 풍성했던 ‘재테크의 잔치’가 막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유럽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올려가며 유동성(돈)을 빨아들이는 정책으로 돌아섰다. 세계의 자산가격을 올려 놓았던 엔화 투기자금의 일본 복귀도 시간 문제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글로벌 자산 버블(거품)의 조정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주식·부동산이 폭락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이나, 적어도 지난 몇 년 같은 수직 상승세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이제부터 재테크의 주제는 ‘리스크(손실위험)’와의 격투가 될 것이다. 안개 자욱한 불확실성 속을 당신의 판단력 하나에 의존해 헤쳐가야 한다. 목표 수익률도 좀 낮춰 잡는 편이 안전하다. 비행기로 치면, 자동항법장치를 끄고 고도를 낮춰 육안(肉眼) 저공비행 모드로 전환하는 것이다.
버블이란 반드시 꺼지는 법인데 호황에 취한 당신은 이 사실을 잊고 있었을 것 같다. 이제 잔치가 끝났으니, 당신도 나도 ‘피곤한 재테크’의 계절을 준비해야 한다.
[박정훈 경제부장 j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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