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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방학이 끝나기 1주일 전부터 아이는 “빨리 학교에 갔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다. 이유를 물었더니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학원도 안 가도 되고”라고 한다. 신나게 뛰놀던 방학이 끝나면, 앞으로 교실에 갇혀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답답해지던 우리네 유년 시절 기억과는 딴판이다.
학원 위주의 교육이다 보니 오히려 학교는 가서 쉬는 시간이고, 학교가 아니면 다들 학원 가기 때문에 친구들 만날 기회가 없다고 애 엄마가 부연 설명을 했다.
학교가 상대적으로 즐겁게 느껴질 정도라면, 학원이다 학습지 교육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아이가 새삼 측은하게 느껴졌다. 무심히 넘어갔었는데, 방학 중 일요일 저녁에도 학원 간다고 무거운 가방을 지고 나서던 딸아이 모습이 떠올랐다.
몇 년 전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나도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해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이 어린이는 “어른인 아빠는 (이틀 동안)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어린이인 나는 27시간30분 공부하고 20시간30분을 쉰다.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고 절규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오히려 계속 악화되고 있다. 요즘 방학 때 중·고등학생 대상으로 운영되는 학원 ‘자물쇠반’이란 게 있는데, 오전 10시에 들어가면 밤 10시까지 못 나온다고 한다. 밤이 되면 복도마다 몽둥이를 든 감시원이 돌아다니고, 점심과 저녁 두 끼를 도시락으로 때운다.
한국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교육과 입시라는 거대한 감옥에 갇힌 채 길러진다는 말이 실감 난다. 감옥은 학교만이 아니라 가정 및 학원으로 구성된 전 사회적 조직이다(김덕영의 ‘입시 공화국의 종말’ 중에서).
최근 만난 한 지인은 “중학생 아이를 애 엄마와 함께 1년간 미국에 유학 보냈는데 아이가 돌아오지 않으려고 해 고민”이라며 자못 심각한 표정이었다. 아이가 “미국에선 공부 안 해도 잘사는데, 왜 한국 가서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야 하나”라고 따진다는 것이다.
우리 부모들의 교육열이 아무리 높다지만 10~20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공교육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학력에 따라 아이들을 줄 세우는 서열화 문화 때문이라고도 하면서 끝없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유야 어쨌든 지금 우리 아이들의 소중한 자유가 희생되고 있다는 점이다. 온 나라가 병영이던 군사독재 시절에도 아이들에게만은 자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얼마 전 A국의 주한 대사관 관계자로부터 “한국의 교육 문제는 UN 인권위원회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공부라는 거대한 감옥 속에서 침해받는 아이들의 자유와 인권은 외국인 노동자나 빈곤층, 장애인 문제 못지않게 심각하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교육 시스템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으로 오늘도 논쟁만 벌이고 있다. 아이들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일단 감옥에서 풀어 주는 것이 순서 아닐까. 물에 빠진 사람은 일단 건져 놓고 볼 일이다. 교육 시스템 개선은 그 뒤에 논할 일이다.
그래서 방학이 끝나면 싫다고 떼쓰는 아이 모습을 보고 싶다.
[이지훈 경제부 차장대우 jh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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