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설,칼럼)

[왜냐면] ‘친권 문제’ 침묵이야말로 아이들에 대한 폭력이다 / 정은주

설경. 2008. 11. 19. 21:11

[한겨레] 왜냐면

‘나쁜 남편일지라도 친권문제는 그들에게’ 반론

가족의 이름으로 덮어지는 가정폭력·자녀 유기…

미성년인 아이들이 선택하게 해야 한단 논리는

피투성이가 되어도 “이건 집안일”이라며 물러서란 말

조성민씨는 아비로서 조용한 그늘이 되는 게 천륜이다


11월17일치에 실린 김승만씨의 ‘나쁜 남편일지라도 친권문제는 그들에게’란 글에서 김씨가 잘못 짚은 것은 ‘아이에 대한 미래’ 부분이다. 김씨의 주장과는 달리, 이 모든 논란의 중심에는 바로 미성년인 아이들의 미래가 최우선으로 떠올라 있다. 조성민씨 자신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복지와 행복이라 했고, 이를 비판하는 쪽에서도 아이들의 앞날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핵심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사적 영역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다고 했으나, 이 경우에는 침묵과 무관심이 오히려 폭력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침묵을 택할 때 법과 제도는 기존의 형식을 지키려 할 것이다. 혈연에 의해 저질러지는 부도덕과 비양심은 ‘가족의 이름으로’ 덮어지고, 이에 개입하는 것을 오지랖 넓다 비판한다. 그래서 수많은 가정폭력과 자녀 유기·방임 등이 용인되는 사회를 만들어 놓았다.

미성년인 아이들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사회는 침묵해야 한다는 논리는 곧, 대로에서 사람이 폭행으로 피투성이가 되어도 “이건 집안일”이라는 한마디에 뒤로 물러서라는 말과 같다.

한 개인의 가정사이기 이전에 이와 유사한 친권 문제로 신음하는 이 땅의 수많은 아이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논란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피땀 흘려 아이를 키우고 경제적인 기반도 마련해 놓은 한부모의 갑작스런 사망에 이어, 오랜 시간 단 한번도 부모 도리를 해 본 적 없는 다른 한부모가 나타나 보험금이나 기타 재산권에 따른 금전을 취하고는 다시 아이들을 방치한 사례들은 수없이 많다.

조성민씨 친권 회복을 비판하는 이들은 천륜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천륜을 목놓아 외치고 있다. 천륜이란 권리 주장을 위한 것이 아닌, 하늘이 내린 인연에 대해 예를 갖추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어미를 잃은 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해,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용히 그늘이 되는 것이다. 재산권은 양보하지만 친권은 포기 못 한다느니 하는 ‘권리’에 집중된 발언을 할 게 아니라, 친권 등 모든 법적 권리는 다 내려놓고 오로지 천륜에만 마음을 다하겠다 해야 한다.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아이들에게, 그 시간의 갑절 이상 오랜 시간을 들여 마음으로 사랑을 보여줄 일이다. 자신이 번 돈으로 매달 양육비를 꼬박꼬박 보내고, 아이들 운동회와 소풍 등 학교 행사에 엄마 대신 참가하고, 아이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알아가는 일은 결코 단시일에 되지 않는다. 변호사를 선임하여 권리부터 챙기려 했다는 오명을 씻고 싶다면, 이제 친권을 포함하여 법적 관심에 집중된 모든 행보를 내려놓고 더 고귀한 천륜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김씨의 말처럼 단순히 선악을 나누고 징벌을 하자는 의도가 아니다. 만일 법·제도가 인간의 헛된 욕망을 부추긴다면 그 제도의 부조리에 시민의 이름으로 철퇴를 가하자는 것이다. 천륜이라는 말은 권리 주장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닌, 하늘이 내린 인연에 대해 예를 갖추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어린 자식을 잃고 난 후 입양을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입양 동의서가 없다는 이유로 시설에서 외롭게 자라는 것을 보았다. 부모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 채 보내는 긴 세월을 자신을 입양해 줄 이를 간절히 기다리는 그 아이들은, 친권 포기 의사를 밝히지 않은 부모들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이제 법원의 판결도 점차 친권을 제한하는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재산 증식에 실제적으로 기여하고 아이들을 정성으로 보살핀 친지 등 양육자에게 재산권을 포함한 법적인 권리를 보장해 주고, 천륜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혈연에게는 그야말로 천륜을 실행할 의무와 짐을 지워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부모 자식 관계가 아름답게 구현된 모범” 아니겠는가?

정은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