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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공자와 ‘강남엄마’

설경. 2008. 11. 20. 17:43

어느덧 대학입시철입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2009학년도 대입 정시모집 요강이 확정 발표됐습니다. 올해는 수학능력시험의 변별력이 높아져 70개교가 넘는 대학들이 수능 성적으로만 신입생을 뽑는다고 합니다. 이맘때가 되면 수험생이 있는 가정들은 모두가 비상입니다. 가채점해서 나온 점수로 어느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지 소위 작전짜기에 전 식구가 동원됩니다.

‘어느 대학에 진학 하는가’가 우리 사회에서 가치의 기준이 되고 신분 상승의 기반이 된지는 이미 오래전입니다. 극성스럽다 못해 처절할 정도로 대학입시 설명회를 �아다니고 작은 정보 하나까지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말 곳곳에서 열린 설명회장에는 수천명씩 몰려와 계단까지 쪼그려 앉으며 일대 북새통을 떨었습니다.

일부 유명 학원과 스타 강사들은 설명회니 논술 강의니 하며 한몫 잡는 철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학원가를 단속하고 수강료를 공개토록 하는 등 엄격히 제재한다고 발표했으나 이들의 행태는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언론들도 이때쯤 되면 ‘몇 점으로 어느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며 함께 바람잡기에 나섭니다.

요즈음 극심한 경기 침체로 경제관련 기사가 많다보니 신문 1면에서 대입관련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관심 있는 기사가 적을 땐 대입기사는 가독성이 높은 확실한 1면용 기사입니다. 신문 제작에 관한 이야기지만 올해도 58만명이 넘는 학생이 대입수능시험에 응시, 전국의 50만가구 이상이 대입 기사에 관심을 쏟고 있다고 볼 때 주변인이나 가까운 친척까지 계산하면 최소한 200만가구 이상, 700만~800만명이 대입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단순히 산술적인 결과가 나옵니다. 대입이라는 것만으로 상당히 많은 독자가 확보된다는 얘기가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입시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어떤 이들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대학입시와의 전쟁이 시작된다고 하기도 합니다. 우연히 읽은 ‘강남엄마’란 책이 있습니다. 스스로 강남엄마를 자처하는 필자의 교육담을 쓴 책으로 일부 공감되는 구절도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인지 하는 회의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1학년에 이르는 10년 동안 해야 할 공부를 미리 정해두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10년 동안 교육목표가 바뀔 수도 있고 사춘기, 건강 같은 아이의 개인사정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아기부터 초등학교 6년 동안 시키게 될 교육과정을 미리 정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필요한 교육은 초등학교 시기의 교육 목표를 연장하는 정도로 좀 느슨하게 계획하였다. 초등6년 동안 우리 아이들이 달성해야 할 학습목표를 세워놓고 각 단계마다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

중학생과 초등학교 고학년인 자녀를 두고 있다는 필자는 아직은 자신의 자녀들이 성장 중이지만 재산투자보다는 자녀의 교육투자를 앞세운다며 강남엄마는 결코 부자가 아니며 성적지상주의자들이 아닌, 일반적인 편견처럼 아이들을 공부로 꽁꽁 묶어 두는 몰상식한 극성엄마가 아니라고 변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자녀들의 학습계획표는 어려서부터 말하기, 듣기, 읽기, 영어, 음악, 미술 심지어 태권도까지 24시간 빈틈없이 짜여 있습니다. 또 치맛바람에 이어 바짓바람도 예사가 아니랍니다. 대학을 가기위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반문하고 싶습니다.

교육학자들은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이 오로지 대학 입학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자연히 함께 배우는 공교육은 도외시되고 일부 층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 사교육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강남엄마’가 있는 한 공교육이 제 구실을 한다 해도 사교육이란 알파를 추가하면 추가했지 결코 사교육이 위축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주장입니다.

이런 풍조 속에 KAIST의 심층면접 위주 학생전형은 새로운 시도가 되고 있습니다. 점수 위주의 선발에서 벗어나 인성과 창의력, 리더십 등 잠재력 있는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취지로 지난해 시작되었습니다. 올 최종 합격자의 성적과 면접점수 등을 분석한 결과 대상자 중 30% 가까이가 높은 면접점수를 받아 서류 성적 점수가 자신보다 좋은 지원자를 제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학생은 고교 내신은 5등급으로 낮았지만 국내외 과학분야 경시대회에서 입상한 실적과 높은 면접점수로 합격했답니다.

교육(education)의 어원은 라틴어 educare에서 온 것으로 ‘밖으로 끄집어내다’란 뜻을 지녔습니다. 즉 잠재적 소질과 능력을 발현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옛날에는 공교육과 사교육의 구분 없이 개개인의 소질을 계발하고 사회를 통합 발전시키는 도구로 활용됐습니다. 개인의 소질 계발이 앞설 때는 사회의 불평등과 계급간의 격차가 나타났고 사회 통합이 강조될 때는 개인의 창의력이 억압당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교육은 예로부터 개인과 사회가 조화롭게 발전하도록 도모해 온 것입니다. 단지 사회에서의 우열을 가리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 것이 아닙니다. 공자도 ‘박학’편에서 예를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고, 명백히 분별하며, 독실하게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인용(智仁勇)을 겸비한 군자를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고 했습니다.

50만명이 넘는 수험생이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또 수험생이 있는 가정 역시 팽팽한 긴장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걸고 버텨왔던 수험생들의 그동안의 시간들에 대해 위로의 말을 드립니다. 오늘은 잠시 가뜩이나 어려워지고 있는 경제이야기를 벗어나 보았습니다. 수험생을 뒷바라지 해온 부모님들의 노고와 수험생들의 선전을 응원합니다.

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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