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대입논술 가이드]집단 이분법의 위험성

설경. 2009. 1. 19. 20:39

검찰총장이 지난 2일 ‘검찰 신년 다짐회’에서 한 말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인하면서 친북좌익 이념을 퍼뜨리고 사회 혼란을 획책하는 세력을 발본색원 해야 한다.” 같은 날 어느 석간신문에 “친북좌익세력 발본색원”이라는 대문짝만한 제목으로 기사화되었다. 1980년대 주요 기사의 상투적 제목인 ‘좌익용공세력 척결’ ‘좌익용공’이 ‘친북좌익’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 그 존재를 관용해서는 안 될, 그리하여 척결하거나 발본색원해야 할 세력이 얼마나 존재한단 말인가. 불과 2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척결의 대상이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사람들로 밝혀져 국가적으로도 공인되었다. 과거의 오도된 프레임으로 2009년 오늘을 재단하려는 것이 기억에도 생생한 역사의 경험과 교훈을 너무 쉽게 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검찰총장은 계속해서 말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고히 하는 것은 경제난 타개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라고, 박정희 유신정권은 안보 못지않게 ‘잘사는 것’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인권을 합헌적으로 유보하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다시 말해 잘살기 위해서 아니 잘사는 수준에 도달하기까지는 전통적 민주적 가치들이 일정 정도 유예되거나 침해되어도 된다는 논리를 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민주주의가 무슨 소리냐, 배부른 소리 마라라는 논리다. 검찰총장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공고화를 말했지만, 거기에서 유신시대의 논리가 읽혀진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이분하여 보면 개인차원에서는 세상에 대한 이해가 쉬워진다. 대개는 자신을 선한 진영에 위치시키기 때문에 당당하고 평안하고 편리하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그리하여 평균적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선악의 상대성을 인정하고 개인차원에서는 상당히 관용적이다. 하지만 그런 개인들이 파당을 짓고 집단을 이루면 사정이 달라진다.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집단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모호하거나 보편적인 가치(이익)를 내세워 동질성을 확보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경쟁하는 집단과의 차별성이 부각되면 집단의 결속력은 더욱 강화된다. 그러나 집단이 내세우는 가치가 모호하고 보편적일수록 다른 집단이나 경쟁집단과의 차별성은 감소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선악의 이분법 논리가 등장한다. 이 논리의 특징은 상대가 현실적으로 어떠한가보다는 상대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데, 자신이 가장 공격하기 쉬운 모습이기를 바라면서 상대를 규정짓는다. 악한 특징을 가진 허수아비를 만들어 이를 상대방의 진면모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선한 특징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편적이지만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 알게 모르게 집단의 구성원이 된 개인들은 이제 고민 없이 선악의 논리에 편승할 수 있게 된다. 집단의 이념과 논리가 고민을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좌익세력’이란 말은 과거 절대적 금기와 혐오의 대상이었고,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지금도 그런 인식적 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 그 말 앞에 비록 ‘친북’이란 접두어를 붙여 ‘친북좌익세력’이란 말로 구체화했다고 하지만, ‘친북’이란 말이 또한 애매모호해서 암암리에 북한 체제를 옹호하거나 남한을 부정하는 세력으로 읽힐 수 있다. 이렇게 읽힐 때 친북좌익세력은 철저히 악의 세력이라는 ‘분명한’ 허수아비가 되어 공공의 적으로 인식될 터이지만, 그 경계선이 모호한 관계로 이 범주에 드는 세력은 무한정으로 확대될 수 있다. 게다가 경제난 극복(잘살기)이라는 실용적인 기준마저 내세웠으니 친북좌익세력이라는 허수아비는 눈에 보이지 않는 허깨비로서 그야말로 악의 화신으로 천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누구라도 그 허깨비로 분칠될 수 있지만 악의 화신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기도 어렵다. 사람들은 이 단순 논리의 명쾌함이 주는 짜릿함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악의 본질과 특성을 지닌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 공연히 분풀이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정신의 위안을 줄 수 있을지언정 당면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의 난관을 은폐하거나, 더욱 꼬이게 만들어 더욱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할 뿐이다. 더욱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해지는 까닭이다.

1 친북좌익세력 발본색원론의 타당성을 논의해보라.

2 집단의 선악 이분법 논리의 본질과 문제점을 논의해보라.

3 민주주의와 관용의 관계를 논의해보라.

<최윤재 | 서울디지털대학 문창학부 교수·한국논리논술연구소장(klogi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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