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복원은 이명박 대통령 ‘작품’이다. 그가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걸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코웃음을 쳤다. 상대편 후보는 “청계천 복원 공약이 이 후보의 발등을 찍을 것”이라는 발언도 했다.
이 대통령은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청계천 복원에 매달렸다. 2002년 7월로 기억된다. 각 국실 업무보고를 마친 ‘이 시장’은 복개 구조물로 덮여 있던 ‘지하 청계천’을 찾았다. 복원 공사를 위한 사전 현장답사에 나선 것이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르고 찜통을 방불케 하던 현장에서 “청계천을 친환경적으로 복원해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역설하던 이 시장의 확신에 찬 모습은 지금도 기자의 눈에 선하다. 이후 청계천은 ‘멋드러지게’ 복원됐고 그의 대통령 만들기에 혁혁히 공헌했다.
지하 청계천을 찾은 지 7년쯤 지난 16일 이 대통령은 전남 나주 영산강변을 찾았다.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 보고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는 대통령 취임 이후 4대강 정비 사업을 독려하고 있다. 마치 불도저를 보는 것 같다. 청계천 복원을 밀어붙이던 이 전 시장의 모습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청계천과 4대강이 뭐가 다르냐’는 식이다.
이 대통령이 혹여 이처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을 하는 것이다. 청계천은 한양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진 뒤로 줄곧 ‘하수도’로 사용돼왔다. 600년 전에도 오물이 떠다니고 악취가 풍겨나는 하천이었다. 하지만 낙동강 등 4대강은 다르다. 살아있는 하천이다. 100여종 이상이 어류와 수생식물들이 수천년 동안 그곳을 터전으로 서식하고 있다. 이 중에는 희귀한 멸종위기종도 적지 않다.
영산강 현장에서 이 대통령은 “4대강의 수심이 5~10m는 돼야 한다”며 4대강 정비 사업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하천을 10m 깊이로 만들려면 강바닥을 긁어내야 한다. 하천 생태계 파괴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하천에는 공사가 끝날 때까지 흙탕물이 일 것이다.
무엇보다 청계천 복원은 대다수 시민과 여론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반면 4대강 사업은 국민 대부분이 ‘대운하’ 건설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신문에 실린 이 대통령의 영산강 방문사진은 7년 전 지하 청계천 현장에서 보던 자신에 찬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의 머리 속에서는 청계천 복원 신화가 더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시장 선거시절 상대편 후보가 내뱉던 말이 조금 달라진 문장으로 귓전을 맴돈다. “4대강 살리기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는 이 대통령의 발등을 찍을지도 몰라.”
<김준 |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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