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오늘 새벽, 역대 어느 미 대통령보다 드높은 환호와 기대 속에 취임했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의 상징성이 감동을 한껏 부추겼지만, 그의 취임을 세계가 함께 반기는 것은 그의 성공신화를 마냥 찬탄해서가 아니다.
미국과 세계가 경제위기의 수렁에 빠진 상황에서, 그가 줄곧 외친 ‘담대한 희망’과 ‘변화’를 구현해 미국의 위기 극복과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이끌기를 절실히 바라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취임 연설에서 미국의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안팎으로 갈등과 분열, 과오와 실패로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고 변화와 혁신을 통해 국가의 면모를 일신할 것을 다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자유와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받든 건국 이념, ‘미국의 약속’을 새로이 천명할 것을 미국인들에게 촉구했다. 특히 인종 이념 정파 계층 지역 성별 등을 초월해 ‘공동의 가치와 목표’ 아래 단합할 것을 당부했다.
이런 다짐과 요구는 도덕적ㆍ경제적 파탄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적 자부심과 미래의 비전을 되찾도록 이끌 것이라는 미 국민의 높은 기대에 호응하는 것이다.
동시에 미국의 도덕성을 추락시킨 이라크 전쟁의 종식과 미국민의 낙관주의를 훼손한 경제위기 극복이 최우선 과제임을 확인하게 한다. 이는 곧 오바마가 지금껏 과시한 탁월한 자질에도 불구하고, 결코 성공을 낙관할 수 없는 도전에 직면한 처지임을 일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민과 의회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지만, 구조적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도 이를 숨기지 않는다. 자신과 정부의 힘만으로 벅찬 과제를 감당할 수 없다며, 국민 모두의 책임의식과 봉사와 자조(自助)가 긴요하다고 취임 연설에서 되풀이 강조했다.
이 같은 신중함과 현실주의는 지도자의 품격과 신뢰를 높인다. 외부세계도 탁월한 균형감각과 실용적 자세가 미국 사회의 뛰어난 복원력과 결합됨으로써 경제위기 극복을 넘어 빈부격차 완화와 의료ㆍ복지 개선 등 근본적 변화를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 더러 미국의 좌절을 기꺼워하지만, 미국 경제의 회생 없이 세계가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음을 일깨우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실용과 균형’은 대외정책에서도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다자주의와 국제 공조를 강조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대량살상무기, 국제금융ㆍ무역질서 등의 글로벌 이슈에서 우방은 물론 적과의 타협을 앞세우고 있다. 또 ‘균형력(power of balance)’ 개념을 대외정책의 기본원칙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균형력’ 개념이 모호한 가운데 “세계 문제를 미국 혼자 감당할 수 없지만, 미국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주목된다.
오바마의 미국이 국내위기 극복에 힘을 쏟으면서도, 안보와 무역 분야 등에서 주도적 지위와 이익을 지키는 데 소홀하지 않을 것을 일러준다. 이는 우리에게 한결 어려운 도전으로 다가올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성공과 미국의 ‘새 출발’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변화에 대비하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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