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고교생을위한철학카페] 역사는 인간답게 살았던 선조들의 기록

설경. 2009. 6. 11. 11:23
말이 되는가? 삶과 죽음이 하나라니. 어찌 살아 숨 쉬는 것과 숨이 멈춘 것이 같을 수 있는가? 아침에 눈을 뜨고 삼시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다가 저녁에 맛난 잠을 청하는 것과, 아무런 의식 없이,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숨도 쉬지 않는 상태가 어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하여 틀린 말이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말은 적어도 생물학적으로는 분명히 틀린 말이다.

그럼에도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했다. 어떻게 숨을 쉬면서도 그것이 죽음과 다르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한 땀 한 땀의 호흡으로 오늘을 넘기고 내일을 다시 맞이하는 것이 아무런 의식도 없는 상태와 같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살기 위해 먹는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인간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철학적 인간학은 인간을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이해한다. 인간은 진리를 얻기 위해 애쓰고,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존재이다.

그런 가치들을 추구하는 한에서 먹고 사는 행위 또한 보다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옛말에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여 사람이라면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적 의미다. 그 사람이 어떤 가치를 추구했으며, 그러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실존적 상황에서 어떤 것들을 선택했는지, 그래서 그의 삶을 통해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됐는지에 관한 기록들을 모아 놓은 것이 바로 사람들의 이야기, 곧 역사이다. 우리는 그러한 역사를 통해 자신의 삶의 지표를 고민하고,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법을 깨우친다. 죽음과 삶이 같을 수 있는 비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삶과 죽음이 같다는 말은 한 편으론 처참한 삶에 대한 회한이다. 삶을 마감한다 해도 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탄식이다. 살아서 또다시 세상에 당당히 요구하고 실현하고자 노력할만한 것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말은 동시에 죽음으로써 진정한 삶을 누리겠다는 초연함이기도 하다. 역사적 평가를 확신한 것은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겠다는 의미다. 생물학적 삶을 포기해 정치적 굴레를 벗어나는 대신 역사에 투신해 자신에 대한 진솔한 역사적 평가만이 의미 있는 것이라는 항명의 의미로 읽을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한 항명의 몸짓이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의 가슴에 두고두고 남을 때라야 비로소 삶과 죽음은 하나일 수 있지 않을까.

[문우일 세화여고 교사·'철학, 논술에 딴지 걸다'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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