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22. 해결방안 제시/원인과 해법을 사례별로 구체화하라

설경. 2008. 12. 1. 15:53


[한겨레] 우리말 논술

유형별 논술교과서 / 22. 해결방안 제시

■ 기출문제 유형 2 / 서울대 2008학년도 정시 [난이도 수준-중2~고1]


제시문 (가)를 참조하여 제시문 (나)의 사례 (1), (2), (3), (4)를 현대 민주사회의 다수결 원리에 적용하였을 때 나타나는 문제점 및 그 해결 방안을 각 사례별로 나누어 설명하시오.

(가) (ㄱ) 서로 다른 의견이 대립할 때 합의를 끌어내어 하나의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토론하고 설득하며 때로는 비판하고 타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화를 통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에는 차선책으로 다수결 원리에 따르게 된다. 다수결 원리는 다수의 의사를 전체의 의사로 간주하기로 합의하고 이에 따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수의 의사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잘못된 의견이 다수에 의하여 지지를 받고, 올바른 의견이 소수의 의견이라는 이유로 배척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다수의 의사는 단순히 수적으로 우세하다고 해서 존중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정의에 부합하고 보편성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존중될 수 있다.

(ㄴ) 백제에는 호암사(虎岩寺)에 정사암(政事巖)이라는 바위가 있었다. 국가에서 재상을 뽑을 때 후보자 3, 4명의 이름을 써서 상자에 넣은 다음 봉하여 바위 위에 두었다. 얼마 뒤에 가져와서 열어 보고 이름 위에 표시가 되어 있는 사람을 재상으로 삼았다. 한편, 신라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일을 시행하고자 할 때에는 협의체 역할을 하는 화백에서 만장일치로 시행 여부를 결정하였다.

(ㄷ)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 재난이나 중대한 사안이 발생하였을 때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왕이 널리 의견을 구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는데, 이를 구언교(求言敎)라 하였다. 왕이 구언교를 내리면 전국 각지에서 관원과 백성들이 상소를 올렸는데, 이를 응지상소(應之上訴)라 하였다. 왕은 응지상소를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나) (1) 甲, 乙, 丙, 丁은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다. 주문할 음식의 종류에 대하여 甲, 乙, 丙, 丁의 의견이 서로 달랐다. 甲이 음식의 종류를 통일하자고 제안하였고, 乙과 丙은 이에 동의하였으나 丁은 동의하지 않았다. 丁은 냉면을 주문하고 싶었으나, 甲, 乙, 丙의 요구에 따라 모두 비빔밥을 주문하였다.

(2) 그리스 연합군은 트로이 원정을 앞두고 큰 풍랑이 일어 출항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의 뜻을 묻기로 한 결과, ‘그리스 최고의 보물’을 해신(海神)에게 바쳐야 한다는 신탁이 내려졌다. 아킬레우스는 ‘그리스 최고의 보물’을 아가멤논 왕의 딸 이피게니아로 해석하였고, 대다수 왕들은 아킬레우스의 해석에 동조하였다. 이에 따라 왕들은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치기로 결정하였다.

(3) 甲 마을의 쥐 100마리와 乙 마을의 쥐 30마리가 회의를 열어 마을에 새로 나타난 고양이(야옹이)의 공격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였다. 쥐들은 만장일치로 야옹이 목에 방울을 달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누가 야옹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지에 대하여는 의견이 나뉘었다. 甲 마을의 쥐들은 다수결로 결정하자고 하였으나 乙 마을의 쥐들은 이에 반대하였다. 이에 甲 마을의 쥐들이 乙 마을의 쥐들에게 회의 시간과 장소를 통보한 다음 회의를 열어 찬성 100, 반대 0으로 乙마을의 쥐 찍찍이에게 야옹이 목에 방울을 다는 임무를 맡기기로 결정하였다.

(4) 국회에서 다수 정당이 법안을 제출하였다. 소수 정당은 그 법률안에 반대하였고, 그 정당의 일부 국회의원들이 물리적인 힘으로 본회의 개의를 저지하였다. 이에 다수 정당은 소수 정당 국회의원들에게 본회의 개의 일시를 통지하지 않은 채 다수 정당 국회의원들만으로 본회의를 개의하고, 다수결로 그 법안을 의결하여 통과시켰다.


■ 해결 전략

민주주의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의사에 따라 국가 주요 정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이들이 수렴되어 정치가 이루어지는 체제이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대화와 타협, 상호 이해를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에는 이 같은 의사결정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다수결 원리가 제시돼 있다.

다수결 원리는 가장 많은 사람의 의견이 반영됨으로써 ‘다수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에 부합하지만, 정의롭게 실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의사결정자 모두가 다수결이라는 절차에 합의해야 하고, 그들의 권한이 평등해야 하며, 과정에서 강압이 없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또, 결정하려는 사안은 공동체의 정의에 부합하고 보편적 도덕 기준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나)에는 이런 원칙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문제가 구체적 상황으로 제시돼 있다. 사례 (1)은 굳이 다수결로 통일하지 않아도 될 사안이다. 음식 주문은 개인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이뤄지는 게 적절하기 때문이다. (2)에서 아킬레우스는 신탁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런 아가멤논의 견해를 비판 없이 수용한다. 신탁에서 지칭한 보물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이견 없이 이를 추종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결정된 사안이 한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3)에서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는 목표는 다수결로 결정됐지만, 누가 달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다수결로 하자는 것에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론이 내려졌다. 乙 마을 쥐들이 동의하는 다른 의사결정 방법을 채택하거나, 乙 마을 쥐들이 다수결을 받아들이고 투표에 참여해야 결론은 유효할 것이다. (4)는 다수를 비판하는 소수 의견이 묵살되고, 다수들끼리만 모여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형식을 갖췄더라도 이런 상황은 다수의 횡포다.


■ 자료 검색

정치=자유에 대한 권리주장과 행사

다수결은 만능인가? 민주 사회에서 시민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발표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각자가 처한 입장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이 상충되고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대화를 통해 합의에 도달하면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불가피하게 다수의 의견을 물어 집단의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 다수결 원리이다. 모두의 동의를 얻어 결정하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의견이 더 합리적일 것이라는 전제 아래 다수결 원리를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다수의 의견이 옳은 것은 아니며, 때로는 소수의 의견이 옳은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민주적인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소수의 의견이 존중되고, 다수를 비판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야 하며, 충분한 토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헌법 개정이나 국가의 주요 사안에 대한 국민투표는 국민의 의사를 물어 그 결과에 따른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국민투표에는 독재를 초래하거나 헌정(憲政)을 파괴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나폴레옹이 종신 집정관이 된 1802년의 국민투표,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를 위한 1804년의 국민투표 등은 모두 국민의 압도적인 찬성을 얻었지만, 국민투표 제도가 민주 정치를 말살한 실례이다. - 고등학교 <정치>(지학사) 222쪽

평등하게 말할 수 있는 권리 해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관조적 삶’과 대비되는 인간의 ‘활동적 삶’을 ‘노동’과 ‘작업’, 그리고 ‘행위’로 나누었는데, 거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행위인데, 이는 ‘정치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었다.

정치란 인간들 ‘사이에서’, 혹은 단수의 인간 ‘외부에서’ 생겨난다(사실 한자어 ‘人間’은 이미 이러한 관념을 잘 구현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의 근본은 인간의 복수성(human plurality)에 대한 인정과 긍정이다. 그래서 정치는 진리와 무관하다. 가령 우리는 2×2=4인가, 아니면 2×2=5인가의 문제를 다수결로 결정하지 않는다. 지구가 도는지 마는지를 배심원들의 판결에 의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후보를 다음 대통령으로 뽑을 것인가 같은 문제는 정답, 즉 진리를 갖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의 영역, 의견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행위란 이 정치라는 공적 영역에서 복수의 행위자들이 하는 공동행위, 즉 함께-행동함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의 장이 그리스의 ‘폴리스’였다. 아렌트의 지적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에게 자유롭다는 것은 폴리스에서 산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며, 거꾸로 폴리스에서 살기 위해 인간은 이미 자유로워야 했다. 즉, 본래적 의미에서 ‘정치적 인간’은 권모술수의 인간이 아니라 ‘자유의 인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렌트는 자유가 정치의 의미라고 말한다. 따라서 정치란 무엇보다도 자유에 대한 권리 주장이며 그 행사이다.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고 흔히 오해되는 그리스어 ‘이소노미아’(isonomia)가 뜻하는 바 또한 모든 사람이 법적 활동을 동등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평등하게 말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한다.

남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 그런 자유의 공간으로서 ‘폴리스’가 있는가? 우리는 노예가 아닌,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정당하게 향유하고 있으며 또 적합하게 행사하고 있는가? ‘정치적 인간’ 대신에 ‘경제적 인간’이, ‘정치’ 대신에 ‘정치공학’이 득세하고, 후보들의 정책공약이 아니라 ‘BBK’ 같은 금융사기 사건이 국민적 (무)관심사가 되고 있는 즈음인지라 ‘정치의 약속’에 대한 아렌트의 사유와 ‘정치로의 초대’는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정치적 구호들은 난무하지만 우리에겐 아직도 정치가 부족하다. -로쟈/인터넷 서평꾼, <한겨레21> 2007년 11월29일 제687호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